2009년 4회 정보처리기사 시험 후기(겸 8월 30일 일기)

오늘 정보처리기사 필기시험을 보고 왔다. 뭐 그렇게 준비를 열심히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전공인 전공인지라(컴공)...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시험은 그럭저럭 친거 같은데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돌아왔다. 한마디로 운수대통한 날...나쁜 쪽으로... 워낙 인상깊은 하루였기에 오늘 나의 하루를 정리해본다.

때는 8월 29일 오후 11시. 첼시 vs 볼튼 경기가 시작한다. 그날도 역시 타잔, vagabond과 함께 C9을 즐기던 나는 함께 하던 타잔이 포맷한다며 떠나고 vagabond도 공부해야겠다면서 떠나자, 공부해야겠다는 의욕에 불타 책을 펴들었으나 게임을 나가기전 vagabond군이 던진 한마디가 화근이었다.

vagagond님의 말 : "이번 시즌 첼시 너무 좋은데"

.........603번(SBS스포츠)을 틀었다. 안타깝게 이청용은 결장했지만 볼튼과 첼시 경기가 진행중이었다. 이거 보고 12시부터 4시간 버닝하고 3시간 자면 딱이겠구나...하는 생각이었으나...

현재시각 8월 30일 새벽 4시 20분...

근래 본 최악의 경기력이었음에도 루니의 로또 다이빙과 디아비의 자살골 덕분에 필드골 하나 없이 아스날을 잡은 맨유를 보며 쉴새없이 욕을 날리고, 카카가 떠나간 AC밀란이 같은 밀란에게 4:0으로 유린당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 하다 문득 시계를 본 나는 말을 잊었다.

당시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시험까지는 5시간(가는 시간 빼면 4시간)이 남았고, 잠도 자야 하며, 풀어보겠다고 프린트해 놓은 기출문제는 6개 중에 1개밖에 안풀어본 상태...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

어쨋든 정신을 차리고 그때부터 미친듯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고3 시절 절망의 언어능력 점수를 끌어올리고자 사용했던 방법을 다시 사용했다. 문제 풀이는 대충 하고 오히려 답안을 열심히 보는것. 아예 문제를 안풀고 문제랑 답을 같이 본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자격증은 유형이라...80%는 틀린거 찾는 거일테니...키워드 위주로 미친듯이 외우는 거다...(컴활 1급 하루 공부하고 붙은 1人)

그래도 전공이 컴공이다 보니 얼추 아는 내용이 많이 보이더라. 그래서 알겠다 싶은건 후다닥 넘어가면서 훑다시피 기출문제를 다 보니까 5시;; 8시 반에 고사장에 드러갈려면 늦어도 집에서 8시엔 나가야 하는데, 씻고 준비하고 하려면 잠은 3시간도 못자는 상태인지라 얼른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는데...

첫번째 악운 : 늦잠
오랜만에 너무 많은 공부를 한 탓이었을까......어느새 날은 밝아 7시 50분이라고 찍힌 핸드폰(이라고 쓰고 시계라고 읽는다)을 보고 기겁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언제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5분만에 씻고 옷입고 가방챙겨 나서기" 스킬을 발동하여 집을 나섰다.

허겁지겁 준비하고 나갔더니 시험보는날 재수없게도 비가 주룩주룩, 그것도 어중간하기 그지없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기분이 더러웠던 것이 작은 불운이었다(사실 이제 시작). 시험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컨디션도 중요하거늘...(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새벽 4시까지 축구볼때부터 이미 컨디션은 안중에 없었다) 게다가 전날 저녁 7시부터 아무것도 안먹은 상태라 배가 고플데로 고픈 상태...

두번째 악운 : 길치
이어진 불행은 자타가 공인하는 길치인 주제에 버스비 몇푼 아껴보겠다고 돌곶이 역에서 고사장인 남대문중학교까지 걸어가기로 한 것이었다. 돌곶이 역 1번 출구로 나오는 것과 남대문 중학교까지의 길을 대충 외워놨는데 새벽에 본 축구 생각이랑 벼락치기로 때려넣은 지식들이 뒤섞인 데다가 아침에 번개불에 콩볶아 먹듯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까먹었다;;

기억을 더듬어 그냥 발 닿는데로 걷다보니 직선거리 놔두고 빙 돌아오는 바람에 원래 30분 일찍 도착해서 여유롭게 마지막 정리를 하려 했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입실마감 5분전 허겁지겁 들어와 수험번호 확인하는 신세...

세번째 악운 : 수험표
그래도 전날밤 자기 전에 필기도구랑 신분증, 수험표를 미리 챙겨놨던 덕에 잊은 물건 없이 도착한 건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야말로 이날은 뭔가 나한테 붙었는지 재수가 옴팡지게 없는 날이었던 게다. 고사장 확인할려고 꺼내들었던 수험표를 들고 고사장으로 가던 중에 감독관인지 선생님이 알 수 없는 아저씨랑 부딪쳐서 수험표를 떨어뜨렸는데...

알다시피 비가 왔던지라 바닥은 온통 진흙탕... 엎어지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또 인쇄면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수험표가 죄다 번져 못쓰게 된 상황. 신분증이 있으니 수험번호만 알면(사실 몰라도 상관없음) 시험 보는덴 전혀 지장이 없지만... 이때는 아침부터 연이은 불운에 이미 기분이 더러워질 데로 더러워진 상태였다.

그리고 정보처리기사 시험
시험은 쉬웠던 것 같다. 기출문제에서도 그럭저럭 나왔고 학교에서 배운것도 있고, 키워드 위주로 공부한 덕인지는 몰라도 문제가 딱 갈리더라. 보는 순간 답이 나오는 문제, 아무리 뚫어져라 봐도 답 안나오는 문제. 전자가 많았기에 문제 어려워서 긴장되진 않았다.

다 풀고나서 답안지에 마킹하려고 폼 잡는 순간 시계를 보니 10시였을 정도니 문제가 얼마나 쉬웠을지 감이 오는가;; 마킹까지 하고 그래도 좀 애매했던 문제 고민좀 하고 확인까지 한번 하고 나니 10시 15분...10시 45분까진 못나간다길래 그래도 고사장에서 엎어져 잠들긴 그렇고 시간 죽이느라 죽는줄 알았다.

이런 시험의 불합리함과 불필요함은 말해봐야 입아프고...나의 불운 시리즈를 이어가겠다.

네번째 악운 : 또 길치
시험도 끝났겠다, 어제 잠도 못자서 피곤하기도 하니 얼른 집에 가서 밥먹고 발닦고 잠이나 자야지...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길을 나섰으나, 이때부터 사단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진짜 미쳤었는지 혼이 나갔는지 몰라도 들어온 정문으로 안나오고 사람들 따라 후문으로 나갔는데, 그런 주제에 길은 그대로 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90도 틀어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는 것;;(그땐 내가 진짜 미쳤었던 듯) 아무리 걸어도 아침에 봤던 길은 나오지 않고...표지판은 없고...어떻게든 지하철역 하나만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정처없이 길을 걷다보니 월곡역 표지판이 보이고...또 미친듯이 걷다보니 어느새 여긴 또 어딘가 난 누구인가...

그땐 진짜 제대로 미쳤었는지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걸었는데(이때만 해도 이 사단이 후문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월곡역 표지판을 보고 됐다싶어 하릴없이 걷다 정작 월곡역 표지판은 못찾고 이상한 아파트 단지만 잔뜩 펼쳐지자, 이제 포기하고 그냥 택시타야겠다 하는 순간...나의 눈에 띈 표지판 하나...

"고려대역 <-"

........................내가 정녕 장위동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건가?? 순간 허탈한 감정이 밀려옴과 동시에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집까지 걸어가자...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또 걷는데... 이게 또 일이 안될려면 이렇게 되는건지(사실 내가 길치일 뿐이지만) 걷다보니 기다리던 인문대 캠퍼스는 안나오고 웬 미아리 버스 정거장이 나오네???

알고보니 한번 왼쪽으로 꺾어야 했는데 그걸 모르고 그냥 직진하다시피 했더니 고대 위의 미아리까지 가버린 것. 길 한가운데서 "미아리"라고 씌여진 버스 정거장 표지판을 보고 멍하게 서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쨋든 집엔 가야겠으니...또 걷는다. 미아리가 고대 위니까 왼쪽으로 다시 꺽으면 되겠지.

걷다보니 성신여대 서문이었다.

응??????????????????????????

뭐 이젠 설명하기도 귀찮다. 오늘 오전의 나는 그냥 미쳤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못걸어서 죽은 귀신이 잠깐 나한테 씌였노라고...

구글맵에서 내가 오늘 걸은 경로를 한번 그림으로 대충 그려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빨간 선이 원래의 계획이고, 파란 선이 내가 실제로 걸은 경로를 대충 그려본 것이다;; 어떤가...이정도면 정말 희대의 멍청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15분 걷고 지하철 타면 30분이면 도착하는 집을 2시간동안, 그것도 빙돌아 걸어서 도착한 나를....ㅠㅠ

ps. 벌써 가답안이 나왔다. 채점을 해보니 뭐...밀려쓰지만 않았다면 합격할 거 같아서 다행이다. 이 개고생을 하고 시험마저 떨어지면 정말...
2009/08/30 17:31 2009/08/30 17:31
카카달려
짧은생각 2009/08/30 17:31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hyangii 2009/08/30 18:13  수정/삭제  댓글쓰기

    형섭아.... 아... 너 길치였냐.... 안어울려..... =_=

    • 카카달려 2009/09/06 21:08  수정/삭제

      나 진짜 제대로 길치다;;
      지금 학교에서 지낸 시간이 4년이 넘었는데 학교 주변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제대로 모른다는...

  2. 상호 2009/09/06 10:37  수정/삭제  댓글쓰기

    gps 있는 전화기 사야겠구나..-_-;;

    • 카카달려 2009/09/06 21:08  수정/삭제

      그래서 아이폰 살려는데 안나오잖아;;
      안드로이드폰 나오면 지를까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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